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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곧 생명이다
2019년 09월 09일(월) 16:37
신뢰! 한번 무너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쌓아가기는 힘들지만. 왜 무너질까? 욕심 때문이다. 성서에도 있잖은가.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욕심이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가증스럽고 부질없는 욕망이. 비양심적 사고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상자를 얕보기 때문이다. 이런 불량 사고는 어디서 나올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사자의 상황과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본인의 타고난 기질적 요인도 중요하고. 이렇게 형성되어 버린 부정적 사고는 평생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이런 부류들일수록 이중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당연히 페르소나가 판을 친다. 이율배반적 행위를 많이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때로는 터무니없는 모함도 잘한다. 이러면서도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나쁜 사고 자체를 인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엽기적 살인행위를 저지른 고유정처럼 오히려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때문에 이런 부류들은 하나의 범죄 행위에 그치지 않고 상습적인 경향이 많다. 결국 죽음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서의 말이 아주 적절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기에 악이 항상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런 부류들이 신앙을 갖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악랄한 정치인들을 비롯한 기업가, 관료, 교육자, 사회사업가 등등. 심지어는 직접 목회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은 대부분 기복신앙이 많다. 기도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보다는 부자 또는 승진, 각종 시험에 합격해달라는 기도를 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주변에서 자신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를 인지하기나 하겠는가. 때문에 주변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자아에만 도취되어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사자의 미소에도 진실이 없지만, 이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부정적 진면목을 알기 때문이다. 헛된 욕심이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임에도. 사실 인류의 급진적 발전은 불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 사용하거나 방심하면 모든 것을 일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그만큼 양날의 칼이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춤을 추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어둠과 부정과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불타서 소각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은 모두 죽는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는 일만은 없도록 하자. 항상 지금이 인생 최고의 절정이라는 생각으로 살자. 그러면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을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방향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공감능력을 향상시켜 준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해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나 자신의 이해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나와 너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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