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20.09.27(일) 18:44
호남신문 방문자
전체43,431,963명
오늘1,805명
[편집국에서] 하리수 등장 20년, 바뀐 게 없다


서선옥 / 편집국장 직무대리

2020년 02월 12일(수) 17:00
성전환 수술을 거쳐 남성에서 여성으로 신체를 바꾸고 법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던 트랜스젠더 한 명이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대학 입학을 위한 등록을 끝내 포기했다.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 번진 강하고도 폭넓은 반발 때문이었다고 한다. 방학 중임에도 재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입학처에 항의하고 SNS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여론몰이를 했다고 한다. 뒤늦게 이 대학 동문 일부가 지지 선언을 내며 포용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문제의 트랜스젠더는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과 조사의 대상”이라며 숙대 진학의 뜻을 접었다. 그는 지난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아내 법적으로는 여대 지원에 하자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동의와 지지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만큼 젠더 이슈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높은 벽이 확인된 셈이다.

입학 반대의 뼈대가 된 논리는 20년 남짓 남성으로 살다가 성전환을 해서 굳이 여대에 들어오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남녀공학에 입학해 커밍아웃하지 않고 조용하게 섞여서 대학 생활을 하면 되는데, 굳이 여대를 선택한 것은 트랜스젠더 문제의 공론화를 위한 또 다른 목적이 있으며, 숙명여대가 여기에 휘말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성으로 군에 입대해 성전환 수술을 거쳐 여군으로 근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강제로 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 문제를 보는 시각과 관점이 유사하다.

당분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난다면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히 기존 인식의 틀과 규범의 잣대에 맞춰 혐오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수순을 답습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최근 잇따라 벌어진 이들 사건을 계기로 남성과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정체성으로 지닌 우리 사회 구성원의 권익 보호와 차별배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는 작년말 ‘2019년의 새로운 단어’로 ‘they’를 선정했다. 여기서 ‘they’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인칭 복수가 아니라 3인칭 단수로 사용됐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단수인 자신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달라진 사고가 일상의 언어영역까지 확장해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주 미국 민주당 아이오와주 대선후보 경선에서 깜짝 1위를 한 피트 부티지지 후보는 동성애자다. 경선까지 온 것만도 예상을 깬 일인데, 첫 경선에서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청교도 국가인 미국 사회도 이제 성 소수자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 소수자에 대해 ‘성적 취향’이라는 말 대신에 ‘성적 지향’이라는 표현으로 바뀐지도 오래다.

‘성적 지향’이라는 맥락에서 숙대 합격생이 남성으로 살다가 신체만 여성으로 탈바꿈했다는 인식은 부정확하다. 오히려 성적 정체성은 여성인데 남성 신체로 태어난 사람이 수술을 거쳐 자기 성 정체성에 맞는 신체를 비로소 갖게 됐다고 봐야 한다. 당장 인식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실제 우리 사회가 이를 수용할 만큼 충분히 젠더 이슈에 열려 있는지 반성해보자.

나아가 새로운 젠더 이슈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제1호 트랜스젠더 연예인이었던 하리수(본명 이경은·가수 겸 배우)가 등장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의 예명은 발음이 비슷한 ‘핫이슈’에서 따왔다고 한다.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핫이슈인 성 소수자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공론화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서선옥 기자 /
서선옥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