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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시대 어른들은 어머니의 삶을 보고 배웠다
2020년 11월 11일(수) 17:02
가로등 밑 들깨는/올해도 쭉정이란다./쉴 틈이 없었던 거지./너도 곧 좋은 날이 올거며./지나고 봐라 사람도/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어떤 세상이 맨날/보름달만 있겄냐?/몸만 성하면 쓴다.
이정록의 시 ‘그믐달’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자식에게 이보다 더 현명하고 따뜻한 다독거림이 있을가. 24시간 항상 밝은 데에서 자라는 들깨는 쉴 틈이 없어 쭉정이가 되듯이 사람도 밤낮 잘나가기만 하면 속이 비기 쉽다.
우쭐해져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지나가기 마련이니 몸만 성하면 쓴다는 어머니의 말슴에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우리 어른들의 세대는 그렇게 어머니의 삶을 보고 배웠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엄마 품을 떠나 무엇인가 배우러 다닌다.
엄마는 자녀에게 첫 스승이고 가정은 자녀에게 첫 학교인데,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랑 보낼 시간 없이 밖으로만 나돈다.
이 모두가 세상사 흐름이다.
그러니 스승은 또한 어머니나 다름 아니다.
‘스승의 날’. 아무리 되뇌어 봐도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말인가. 그림을 잘 그리는 철수는 선생님의 초상화를 그려 선물 할 것이다. 손뜨개를 잘하는 연희는 선생님께 한 땀 한 땀 수놓은 손수건을 드릴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토닥거리며 “정말 고맙다”라고 할 것이다. 그 순간 눈가에 맺힌 정에 선생님과 학생은 참으로 기꺼워할 것이다. 스승의 날에 그려보는 모두의 바람이다.
그래야 스승의 날 아니겠는가.
요즈음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부담’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왜 이렇게 스승의 날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아직도 대한민국은 4월의 아픔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지키다 유명을 달리한 교사들 이야기는 우리들 마음 구석까지 뭉클하게 한다.
스승의 날 풍습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우리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 도 있을까.
스승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려고 정한날이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준다고 한다.
“스승의 날이 뭐기에 우리를 이렇게 서글프게 합니까” 이말은 ‘스승의 날’에 푸념하는 어느 여선생님의 넋두리다.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모두가 불편해진다.
오죽했으면 스승의 날 폐지 아니면 스승의 날을 학년말로 옮겨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잘못된 촌지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노끈으로 잡아매거나 빗장이나 자물쇠로 단단히 채우겠다는 셈이다.
언덕을 무너뜨려 깊은 못을 메우겠다는 것인데, 못을 메웠다고 해서 또 물이 고이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어쨌든 교육은 예를 가르치는 데 있다.
이러한 예의 근원을 실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스승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스승의 날은 행사가 아니라 교육의 장인 것이다.
적어도 이날 만큼은 교사가 스스로 교사다운지에 대해 성찰해야 할 것이며, 학생들 역시 스스로 학생 다운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퇴계 이 황은 성의가 가득한 의로운 선물은 모두 받아야 할 것이며, 의롭지 않은 것은 모두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가벼운 물건은 받아서 절교하지 않는 뜻으로 보이고, 중한 물건은 물리쳐 그 사람의 잘못을 깨우치게 해야 함을 역설했다.
중한 물건을 준 학부모는 교사에게 교만함을 부릴 것이고 교사는 어긋남을 알면서도 무원칙의 처사를 일삼을 것이며, 이러한 것을 보다 못한 학생들은 교사를 향해 볼멘 불만을 터트릴 것이다.
어쨌든 현대사회에 들어 ‘스승’의 의미는 많이 퇴색돼 버리고 ‘제자’들은 갈곳을 잃었다.
방향성을 상실한 채 학생과 교사가 뒤엉켜 학교가 마구 흔들리고 있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삶의 무게는 견뎌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참 스승이 필요할 때다.
언제나 스승의 날에는 교문을 활짝 열고 교사들에게 함박 웃음을 안겨주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장기채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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