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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천년의 맛, 김치 예찬
2020년 11월 18일(수) 17:17
전라도의 사투리 중에 ‘게미’라는 말이 있다.
국어 사전에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 그 음식 속에 녹아있는 독특한 맛의 전라도 방언’ 이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은 김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치 젓갈 등이 익어서 맛이 제대로 들었다는 뜻이다.
우리네 밭농사는 마치 아이 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정성을 다한다.
그렇게 ‘가꾼다’. 개화기 한국에서 전도활동을 했던 기독교 선교사 게일이 한국 사람들 밭농사, 짓는 것을 보고 ‘농사가 아니라 원예 (園藝)’ 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유럽에서 밭농사는 밭갈아서 씨앗 뿌리고 다 자라면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부지런한 사람이 응어리진 흙덩이만 깨주면 그만인 것이다. 삼포식 농사라서 거름 줄 필요가 없다.
또 건조하고 추워서 병충해도 없다. 씨앗만 뿌리고 방치해두면 손 한번 쓰는 법 없이 절로 자라고 다 자라면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농사다.
곧 유럽의 농사에는 가꾼다는 개념이 없다. 이에 비해 우리 밭농사는 마치 아이 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손을 많이 써야한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제 몸 가꾸듯 푸성귀를 가꾸었다.
손이 많이 갈수록 푸성귀가 잘 자랑 뿐 아니라 손의 훈김이 푸성귀에 자주 듬뿍 닿을수록 맛이 더한다고 여겼다.
또 그렇게 가르쳐 내방문화로 계승시켜왔다. 모든 정성 다해 가꾸고 나면 수확한다.
수확과 함께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가정마다 주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수확한 모든 재료를 ‘다듬는다’. 다듬는 순간부터 음식에 손맛이 들기 시작한다.
모든 푸성귀는 세 번 씻고도 맑은 물에 여러번 행구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채소를 조리할때 가급적이면 쇠칼로 써는 것을 피했다. 우리 음식의 조리에서 ‘간다’는 동작은 마술처럼 정교하고 신기로왔다. ‘절이다’는 것은 조금씩 서서히 간을 배게하는 과정이다.
‘담근다’ 담그는 과정은 재료나 양념에서 오는 맛이 아닌 손가락에서 나오는 맛을 ‘손맛깔’ 이라해 옛날 부도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렇게 김치 맛의 오묘함은 양념들의 다양한 배합의 결과로 나타났다. ‘삭힌다’ 한국 특유의 ‘삭은맛’은 음식의 발효에서 좌우됐다.
‘갊는다’ 응달에 놓인 독은 김치를 서늘하게 보존하는데 가장 알맞은 그릇이다.
‘묻는다’ 흙의 단열효과를 이용해 오래 보관하는 김칫독은 땅에 묻었다. ‘덮는다’ 짚은 보온 보습 통풍성이 뛰어나 채소류의 보관재료로서 적당했다. 또 한국의 자연환경에서 가꾸어낸 김치재료는 다양하다.
배추, 무, 파, 오이, 미나리, 씀바귀, 부추, 가지, 마늘, 생강, 고추, 갓, 청각, 소금, 새우젓 등 20여종에 달한다. 김치에 관한 첫 기록은 2600~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 ‘시경(詩經)’에 나와 있다.
“밭 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서 저(菹)를 담자”는 구절이 있는데, ‘저’가 염채(鹽菜), 즉 김치의 시조(始祖)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경’의 기록 연대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2000년대 유물중 볍씨와 함께 박씨 오이씨 등이 경기도 일산에서 출토됐다.
중국의 중원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오이를 비롯한 다른 야채류를 재배해 ‘저’와 같은 발효식품으로 간수해 먹은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이후 최근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있다.
또 우리의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무형 유산 위원회에서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김치와 김장문화가 한국 역사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돼 왔고, 공동체가 지닌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한달동안 한 나라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 김치를 담는 사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김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먹거리로 삶과 지혜가 응축된 과학적 음식이다.
진수성찬이 있어도 김치 없는 밥상은 ‘젓가락 갈데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한국의 정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속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상호조화를 이룬다는 철학이기도 하다. 김치는 또한 오미를 갖추고 있다. 고추의 매운 맛, 소금의 짠 맛, 양념과 과일의 단 맛, 젖산발효의 독특한 신 맛, 여러가지 채소의 떫은 맛, 굵은 소금에 절여 막 담근 김치의 쓴 맛이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지녔다.
통배추 김치, 섞박 동치미, 통배추 동치미, 통무 동치미, 섞박 통김치, 동태식해, 동태섞박지, 오징어 섞박지, 낙지 섞박지, 대구 섞박지, 통대구 김치, 고들빼기김치, 통무 소박이, 보쌈 김치 등 김치라는 하나의 식품을 200여종의 다양한 김치로 만든 것은 우리네 어머니에서 어머니에게로 오랜 세월 전승 되어온 생활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소박한 음식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먹는 사람을 위한 지극한 정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제 김치가 세계인들의 식탁에서 사랑받고 인정을 받는 생명의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장기채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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