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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없는 졸속 공사→붕괴 참사로

ㄷ자 건물 만들어 내부 흙 쌓고 과다 살수·철거 강행
흙·폐자재·굴착기 수직 하중 버틸 지하층 보강 부실
성토체·바닥체 내려앉으며 건물 밀어내…전도 붕괴
공사비만 지분 따라 분배 뒤 재하청…입찰 담합 만연

2021년 07월 28일(수) 18:19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는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중간 수사 결과가 나왔다.
속도·수익만 좇는 재개발 사업, 불법 재하도급, 관리·감독 소홀, 입찰 담합, 미흡한 법령 등은 졸속 공사를 초래했다.
건물 해체 물량이 뒤에서 앞으로 쏠리는 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사가 붕괴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총체적 안전 관리 부실과 비리 복마전이 다시 확인됐다.

◇국과수 “흙더미·바닥 복합 작용 붕괴”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8일 학동 재개발 4구역 건물 붕괴 참사 중간 수사 브리핑을 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감정 결과 막무가내로 강행된 철거 공정 중 발생한 수평 하중에 의해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이 무너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층부 일부를 부순 건물 뒤쪽에 쌓은 흙더미(성토물) 위에서 30t 넘는 굴착기로 철거 작업을 했는데, ‘굴착기·폐기물 무게와 토압으로 수평 하중이 앞쪽(건물 앞 도로)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면밀한 사전 구조 검토 없이 내부까지 흙더미를 쌓고 ‘ㄷ자 형태’로 만든 건물을 과다 살수와 함께 무리하게 철거하면서 흙더미와 1층 바닥 구조물(슬래브)이 내려앉으며 건물이 통째로 붕괴했다.
철거 과정 문제점은 ▲건물 외벽 강도와 무관한 철거 작업 진행 ▲하층부 일부 철거 뒤 건물 내부 흙더미 조성 ▲수평 하중에 취약한 ‘ㄷ자 형태’로 철거 진행 ▲1층 바닥 하중 증가·지하 보강 조치 미실시로 조사됐다.
◇절차 무시한 ‘졸속 공사’

공정도 어겼다. 계획대로 5층부터 아래로 1개층씩 철거하지 않았다. 외벽 강도가 가장 낮은 왼쪽 벽을 먼저 허물지 않고 뒤쪽 벽을 부쉈다.
건물 뒤편 부속물 철거 뒤 4층 바닥 높이(11m)로 철거 폐기물(반출 대상)과 함께 흙더미를 쌓았다. 당시 흙더미는 건물 3층 내부까지 찼지만, 구조 검토는 없었다.
이후 4·5층 바닥 보와 건물 지탱용 기둥을 한 번에 제거하고, 굴착기가 ㄷ자 형태가 된 건물 내부쪽으로 파고 들어가 철거를 강행했다. 건물 위층까지 닿는 대형 장비(붐, 굴착기 팔)를 쓰지 않아 작업 반경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먼지를 줄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양의 살수도 이뤄졌다. 지하층 하중 대비 보강 작업도 하지 않았다.
결국, 굴착기의 반복 작업과 잔재물(건축 자재·폐기물)이 바닥 하중을 증가시켰다. 많은 물까지 머금은 흙더미와 1층 바닥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 앉으며 건물을 도로 방향으로 넘어뜨렸다.
국과수도 11m 높이 흙더미가 6.2m 높이로 내려 앉으며 건물 앞쪽 방향으로 하중을 줬고, 1층 바닥 구조물도 ‘V자’ 형태로 무너졌다고 감정했다. 
다만, 흙더미와 1층 바닥 중 먼저 무너져 내린 것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봤다.

◇ ‘비리 복마전’ 공사비 떼고 불법 재하청 방치, 참사로

붕괴 참사의 근본 배경 중엔 광범위한 지분 쪼개기·불법 재하도급 관행이 있었다.
공정별 하청 철거 계약 구조는 ▲일반 건축물(재개발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다원이앤씨→백솔) ▲석면(조합→다원이앤씨·지형이앤씨→백솔) ▲지장물(조합→한솔·대건·거산건설)로 파악됐다.
현대산업개발은 50억 7000만 원 규모의 일반건축물 철거 하청을 한솔에 맡겼다. 한솔은 다원이앤씨와 이면 계약을 맺고 철거 공사비를 ‘7대 3’으로 나눠 챙긴 뒤 신생업체 백솔(사실상 1인 기업)에 재하청을 줬다. 수주 대가로 조합 관계자에게 준 뇌물액에 따라 이면 계약 비용을 나눴다. 
다단계 하청을 거쳐 백솔에 주어진 철거 공사비는 12억 원에 불과했다. 백솔 입장에선 장비 임대 비용을 절감하고 최단기간에 철거를 마쳐야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굴착기가 올라앉을 흙더미를 4층 바닥 높이(11m)까지 쌓아 올렸다.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지형이앤씨 등 업체 2곳이 컨소시엄(공통 목적 달성을 위한 임시 사업 연합체)을 구성해 조합으로부터 22억 원 규모의 용역 계약을 따냈다. 
마찬가지로 공사 참여 없이 대금만 챙기는 ‘지분 따먹기’였다.
실제 공정은 석면 해체 면허를 빌린 무자격 업체 백솔이 도맡았고 공사 비도 4억 원 규모로 크게 줄었다.

◇ 지분 따먹기 관행 처벌 규정 없어, 보완 시급

당초 28억 원 규모의 지장물 철거 공정도 3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꾸려 25%·25%·50%씩 지분을 나눠 수주했다. 
이 중 25% 지분을 갖는 대건은 다원 그룹 실소유 의혹이 있다.
수주에 나선 업체들은 미리 협의해 공정별 낙찰 업체와 투찰금액까지 미리 정해놨고, 실소유 또는 방계 업체를 ‘허수아비’ 경쟁사로 동원해 조직적 입찰 방해 행위도 펼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건설산업기본법에는 ‘지분 따먹기’ 관행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입찰 방해·담합 행위로 확인되면 간접적으로 처벌 가능하지만 입증이 어렵고, 처벌 정도도 관대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지분 따먹기’가 필연적으로 입찰 방해와 불법하도급 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지분 따먹기’ 행위 자체에 대한 형사 처벌, 과징금 부과, 입찰 자격 제한 등 처벌 법규 마련을 관련 기관 등에 건의할 방침이다.

◇원청 현대산업개발은 불법 묵인·방조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안전부장 등이 하도급·불법 재하도급 업체 관계자 모두가 참여한 단체 대화방을 확인했다. 재하도급 업체는 공사 장비를 현장에 반입하기위해 현대산업개발에 장비를 등록했다.
또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안전부장이 지난 3월부터 철거 현장에 있었고, 붕괴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과다 살수’ 지시를 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했다.
현재까지 참사 관련 직·간접적 책임이 드러나 입건된 이는 23명이다. 이 중 9명이 붕괴 책임 관련자고, 나머지 14명은 무리한 철거 공정과 불법 재하도급을 초래한 철거업체 선정 과정 비리 의혹과 관련된 사람이다.     
서선옥 기자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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