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사일생 살아온 석룡산을 다시 가다

2021년 08월 22일(일) 18:06

  사람이 살아가자면 파도처럼 쉼 없이 밀려오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와 도전에 직면한다고 지난 칼럼에서 썼다. 운명의 여신이 유독 자기에게만 가혹하다고 불만과 실망, 좌절과 분노를 할지 모르나,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이 수많은 문제와 시련을 겪고 견디며 현재 이 순간까지 숨 쉬며 살아 있다.
  우리들에게 닥쳐오는 문제와 고난의 종류와 성격도 질병, 교통사고, 화재, 대학 입시나 취업 등 도전 실패, 사업 부도(不渡) 등 천차만별로 많다. 돈(자본)을 주(主)님처럼 모시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 세상이긴 해도 인간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 생과 사(死), 삶과 죽음은 인간 세상의 가장 중대사(重大事)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자명한 사실이다. 
  행운도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불행이나 재앙(災殃)도 전혀 예기치 않게 손 쓸 틈도 없이 들이닥치는 때가 많다. 브레이크 밟을 겨를도 없이 충돌해서 죽는 교통사고 사망사건이나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악화되어 회복 불가능한 질병(암) 환자,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사고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나도 하나 뿐인 나의 생명을 잃을 뻔한 사고를 당했다. 벌싸 5년 전 일이다.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재경 영광군 향우산악회가 주최하는 산행에 고향을 사랑하는 향우로서 참가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 있는 석룡산(石龍山, 해발 1,147km)을 찾아가는 산행이었다. 가랑비도 오고, 낙엽도 수북이 쌓인 산길에서 석룡산 정상 3분의 1 쯤 남은 지점에서 함께 올라간 일행 보다 나는 앞서서 걸었다.
  정상을 올랐다. 정상 표지석이 두 동강난 것을 시멘트로 붙여 놓았다. 살고 있는 서울 노원구에서 천년산악회 회장으로 회원들과 함께 관광버스 한 두 대로 매월 정기산행을 하고, 산 정상에 거의 예외 없이 올랐다. 정상 표지석이 두 동강 난 것은 처음 본다.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낙엽으로 덮혀서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길 같은 길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서 내려갔으나 계곡과 우거진 잡목으로 길이 막혀서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길을 찾기 위해서 다시 능선을 타고 다시 산 정상 부근으로 오르고, 다시 내려갔다가 살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다시 정상 부근에 오르기를 세 번 정도 했다. 날도 저물고 힘도 기진맥진되었다. 군사보호구역이어서 그런지, 38선 이북이어서 그런지 문자나 전화도 안 되었다.   
  추위와 공포와 저(低)체온으로 극한상황을 겪었다. 가평소방서 구조대원들은 다음날 새벽 0시 44분경 조난 현장에 도착했고, 세 시간 가량 걸어서 내려와서 새벽 4시 경에 119 구조차량에 탔다. 2015년에도 10여 건의 조난사고가 있었고 불행(죽음)을 당한 사고도 있었다는 말을 출동한 구조대원들로부터 험난한 밤 하산길에 들었다.
  지난 8월 16일(월), 광복절 대체 공휴일에 5년 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서 돌아온 석룡산 조난 사고 현장을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과 함께 다시 찾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충격적인 상황의 정신적인 외상(外傷) 후에 오는 스트레스 장애와 트라우마(trauma)를 간직한채, 많은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서 다시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기억을 더듬어서 가평군이 세운 ‘1-8 등산 안내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올라갔다. 정상 표지석은 새로 설치한 흰 색 큰 표지석이 있고, 그 뒤에 5년 전에 시멘트로 붙여 놓은 두 동강난 작은 검은 색 정상 표지석이 그대로 있었다. 이번 산행 전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두 동강난 표지석은 새 표지석으로 바뀌어져 있었는데, 다시 두 동강난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두 동강난 표지석 바로 옆에는 반 쯤 토막난 사각형 돌기둥 앞면에 ‘赤木里 山 1-1番地’ 라고 새겨저 있는데, ‘赤’ 글자가 반 쯤 떨어져 나가서 없다. 그 뒷면에는 ‘8月 1日 設立. 加平郡守’ 라고 새겨저 있는데, 몇 년도 부분이 토막 나서 떨어져 나가서 없다. 사진을 찍고 5년 전처럼 오던 길을 따라서 하산을 시작했다. 
  5년 전에 비하여 등산 안내 표지(이정표)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곳 갈림길에 안내 표지판 설치가 많이 안 되어 있었다. 둘이 등산했다가 하산하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길을 잃기 쉬운 등산로였다. 나는 든든한 동행자와 함께 지난 번 생명을 잃을뻔한 극한의 고통과 절망을 이겨낸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서 길을 찾으며 하산했기에 망정이지, 등산로가 명확한 다른 산에서처럼 하산했다면 또 다시 길을 잃고 헤매일 위험이 아주 농후했다. 참, 불행한 일이다. 
  5년 전에도, 지금도 석룡산은 아주 위험한 산이다. 두 동강 난 산 정상 표지석(검은 돌)이 두 동강 나지 않은 새 표지석(검은돌)이 되었다가, 다시 두 동강 난 채로 있다. 산 밑 등상로 입구에 가평군이나 가평군수가 설치 안 한 것이 명백한 ‘들어가면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큰 알림판이 설치되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두 동강 난 정상 표지석과 윗 부분이 사라진 정상의 지번(地番) 표지석, 그리고 등산로 입구의 이 알림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석룡산에서 조난 당하여 생명을 잃은 분의 가족이 원한이 맺혀서 한 행위는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은 넓고 알아보고 연구할 일은 많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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