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

2021년 03월 21일(일) 19:31

  예부터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세월이 흘러가고 계절이 바뀌어서 봄은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나 보다. 옛날에는 우선 가난으로 항시 먹을 식량이 부족한 처지에 봄이 되면 가을에 수확했던 곡식이 떨어져서 식량난이 극심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봄철에 어려운 식량 부족을 많이 겪기에 춘궁기(春窮期)라는 말을 지금 60대 이상 사람들은 어린 시절 많이 들으며 자라났다. 
  농업의 비중이 크던 1960년대 까지만해도 봄철에 먹을 보리쌀도 부족해서 쑥국이나 나물국, 밀가루 수제비로 식사를 대용하는 일도 많았다. 늦은 봄, 6월쯤 되면 아직 익지도 않은 풋보리를 베어다가 죽이나 밥을 해먹기도 했다. 쌀밥은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나 먹을 수 있고, 조상님 제사(祭祀) 때에 간신히 제사상(床)에 올렸다. 그래서 제사 덕에 이밥(쌀밥) 먹는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어떤 일을 빙자하여 이득을 얻는다는 뜻으로 전이(轉移)되었다.
  봄철의 가난과 식량난에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재난까지 겹치면 힘 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하늘을 보며 탄식하고 자기 운명을 탓하며 견디어내야 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근면 자조 협동의 국가사회적 기풍을 진작시켰던 1960년대 새마을운동은 경제사회적으로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6·25 동족상잔(相殘)의 전쟁과 분단, 가난과 독재의 마이너스 이미지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 진입한 기적은 그 출발은 새마을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입장과 생각에 따라서 다른 이견과 주장이 있을 수 있다. 5·16군사 쿠데타와 3선개헌, 1972년 유신독재 등 정치적인 행태는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폭거요 비극이다.
  이제 가난은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말이 되었고,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어려운 말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잘 사는 세상이 되었는데(풍요), 잘 사는 사람은 너무나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너무나 못 산다(빈곤)는 뜻이다. 빈부(貧富) 격차의 심화,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 무너진 계층 상승의 사다리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절대적인 가난은 벗어났지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따뜻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힘든 일상을 버티면서 견디어가고 있는 일반 서민들은 1년 전부터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 하고 있다. 외출 시에는 이유 뷸문하고 무조건 써야 하는 마스크를 나는 복면(覆面)이라고 부른다. 얼굴의 전부나 일부를 헝겊 등으로 싸서 가려주는 것이 복면이다.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소(牛, 丑)와 친하다. 외양간에 소를 키우며 농사철에는 소를 부려서 논이나 밭을 쟁기질로 갈아 엎어서 벼와 보리, 콩 등 농작물을 가꾸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돕기도 하면서 자랐다. 어린 시절, 꼴망태에 소깔(소풀)을 베어 가지고 와서 소죽을 끓이기 위하여 아궁이에 짚불이나 장작불을 피우기도 했다. 
  나는 머스크를 쓰고 다닐 때 마다, 소의 입에 씌우고 다니던 부리망(網), 머구리가 생각나서 소에게 미안한 생각을 한다. 짚으로 꼬아 줄처럼 만든 작은 새끼로 그물 같이 성기게 엮어서 만들어 소를 부릴 때에 소가 곡식이나 풀을 뜯어 먹지 못하게 하려고 소의 입에 씌우는 물건이 머구리, 부리망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날마다 식사할 때만 벗고 늘 복면, 머구리, 부리망을 쓰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 못하는 소의 덕(德)과 희생을 생각하며 소에게 감사한다.
  사람들이 에너지를 낭비하여 지구가 점점 더워지는 온난화로 기후는 우순풍조(雨順風調)하지 않다. 지구촌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봄에 폭설이 쏟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폭우와 태풍, 폭염과 혹한, 홍수와 지진, 해일(海溢)은 갈수록 심해져서 자연을 파괴한 대가를 단단히 치르고 있다. 중국 내륙 사막지역에서 황사(黃砂)와 초미세먼지까지 날라와서 하늘과 도시가 희뿌연 날에는 마스크가 생명의 유일한 방어 장비 같은 절박감마저 든다.
  2021년 3월 초봄, 꽃 피고 새 우는 따뜻한 봄날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마스크를 쓰고도 황사까지 희뿌연 봄날, 꽃 구경은 커녕 건강한 것만도 큰 축복이다. 성 추행으로 물러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4·7 보궐선거가 다가오자 상호 비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사건이 터져서 전 공기업과 공직자 가족까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래저래 국민들의 마음의 하늘은 희뿌옇다. 봄이 왔어도 봄 같지가 않은 것은 나만의 지나친 감상인지 모르겠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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