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만이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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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규제만이 답일까

순천소방서 서장
작년 12월 10일부터 소방청은 소방시설법 시행령 일부개정을 통해 건축공사장에서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채 용접작업 등을 하는 경우 즉시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소방서 단속반이 위반사항을 발견해도 소방서장이 해당 시공사에 시정명령을 하고 이를 어긴 경우에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졌다. 소방시설법의 개정으로 인해 즉시 제재가 가능해져 실효성을 높였다는 평이다.
임시소방시설이란 부유 분진, 불꽃, 열, 가연성 가스 등이 발생하는 작업을 하는 공사장에 설치해야하는 시설로 종류로는 소화기, 간이소화장치, 비상경보장치, 간이피난유도선이 있다. 간이소화장치, 비상경보장치, 간이피난유도선은 모든 공사장에 설치가 강제되는 것은 아니며 공사장 규모, 지하층, 무창층 유무 등에 따라 달라진다.
소화기의 경우 모든 공사장에서 용접·용단 등 화재발생 우려가 있는 작업을 진행할 때에는 작업장 5m 이내에 소형 2개, 대형 1개를 구비하여 유사시에 즉시 조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단순히 소방시설을 강제하는 것만으로는 화재예방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에 일정규모 이상의 공사장의 경우 화재감시자를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화재감시자는 사업주가 지정하며, 공사현장에서 화기취급사항을 전반적으로 감독하고 임시소방시설이 설치기준에 부합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근로자를 즉각 대피시키고 화재사실을 사업주, 소방서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규제를 강화한 뒤 공사장 화재발생현황은 어떨까. 지난 2월 영등포 공사장화재와 부산 대심도 공사장화재, 3월 속초 주상복합 공사장화재, 4월 남양주 공사장화재, 같은 월 남양주 오피스텔 건축현장화재, 지난달 판교 건물 공사장화재 등 한 달이 멀다하고 대형 공사장화재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전남에서는 1월부터 5월까지 공사장화재가 13건 발생하였고 올해 동기간에는 3건이 증가한 16건이 발생했다.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고 화재감시자가 제 역할을 한다면 화재가 발생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발생현황과 통계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공사장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사업주는 공사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가연성소재의 건축자재를 써서 단기간에 공사를 끝내려 하고 화재감시자는 그런 고용주의 기대심리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규정은 갖춰져 있으나 작동여건이 녹록치 않은 것이다.
입주예정자를 화재감사지로 지정하면 어떨까. 화재감시자가 화재보험사 직원이라면. 입주예정자는 건물이 안전하게 지어지길 원하고 화재보험사는 화재가 발생하면 막대한 액수를 보험금으로 지급해야하니, 화재감시업무를 맡게 된다면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할 것이다.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견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을 두고 대립하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할까. 그리고 규제는 얼마든지 신설할 수 있겠지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규제는 한 번 생기면 사라지기 쉽지 않다. 1997년 이후 정부에서는 규제일몰제도(規制日沒制)를 시행하고 있지만 공사장에서 화재가 끊이지 않는 현시점에서 규제가 강화될지언정 완화되기란 요원해 보인다.
희망은 있다. 관계자들이 공공의 안전을 위해 편익 기대수준을 낮추고 자정능력을 갖춘다면 규제가 완화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규제가 줄어들면 장기적으로는 공사부대비용 감소로 이익을 더 누리게 되지 않을까. 헌법 제 37조 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다.
이에 따라 국회는 공공의 안전(공공복리)을 위하여 소방시설법을 제정하여 관계인의 사익추구를 제한하고 있다. 임시소방시설 미설치, 화재감시자 미배치 등으로 공사비용을 줄이고 공사기간을 단축하여 얻는 이익은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관계인은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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